
“사장인 제가 아르바이트 직원보다 월급이 적었어요. 직원 월급도, 임대료도, 대출이자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습니다.”
광주시 동구 충장로1가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던 김모(30)씨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기가 악화하면서 가게를 접었다. 현재 그의 옷가게 유리창에는 ‘임대, 권리금 없음’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비단 김씨의 가게뿐 만이 아니다. 충장로 일대 즐비했던 ‘보세’와 ‘편집숍’ 등 의류를 판매하던 옷가게 상당수가 폐업하면서 ‘임대’ 현수막이 나붙은 빈 점포가 급증하고 있다.
호남지역 최대 중심 상권이었던 광주시 동구 충장로·금남로 상권이 오랜 경기침체에다 코로나19 여파로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구도심 공동화와 인구 감소로 유동인구가 줄면서 침체의 길을 걷던 중 코로나19 사태까지 3년여 간 이어지면서 상가 공실이 증가하는 등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24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2분기 기준 충장로·금남로 지역 중대형매장 공실률은 25.8%로 조사됐다. 4곳 중 1곳은 문을 닫았다는 얘기다. 이는 광주 전체 중대형매장 공실률(15.3%)과 비교해봐도 10.5%포인트나 높은 것으로, 광주에서도 충장로·금남로 상권의 침체가 가장 심각하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충장로·금남로 지역 상가 공실률은 2분기 기준 2019년 15.2%에서 2020년 19.8%로 증가했다. 이후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2021년에는 23.5%, 올해는 25.8%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소규모 매장 공실률 역시 2분기 기준 2019년과 2020년 4.9%, 2021년 3.7% 수준을 유지하다가, 올해에는 무려 13.7%로 껑충 뛰었다.
코로나19에 상권 쇠퇴로 충장로·금남로를 찾는 사람이 크게 줄어든 데다 신축 건물이 별로 없고, 30~40년 전 지어진 노후한 건물이 많다는 것도 공실률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후 건물의 경우 리모델링 비용 등 초기 투자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건축물 생애이력 관리시스템에 등록된 충장로·금남로 상업용 건축물은 총 647동으로, 절반이 넘는 345동(53.3%)이 30년이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상인들에 따르면 호남 최대 상권으로 영광을 누렸던 과거엔 충장로·금남로에서 가게를 차리려면 50평 기준 권리금 3억~5억원에 임대료도 월 2000만~3000만원에 육박했지만, 요즘은 권리금은커녕 임대료마저도 30% 넘게 추락했다고 한다.
여기에 거대 ‘ 프렌차이즈’ 업체나 ‘노포’마저도 침체한 충장·금남로 상권을 버티지 못하고 철수하는 현상이 되풀이 되고 있다. ‘불패신화’인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마저도 10년만에 ‘광주 충장로점’을 철수했고, 1945년 광주시 동구 충장로에 문을 연 ‘노포’(老鋪) 중화요리전문점 ‘왕자관’, 1983년 개업한 만남의 장소로 꼽히는 돈까스 전문점 ‘유생촌’ 역시 충장로 본점은 지키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올 연말까지 광주지역 소매 유통업의 경기전망이 어두울 것으로 예상되면서, 옷가게와 식당 등이 주업종인 충장로·금남로 일대 상권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는 점이다.
광주상공회의소가 광주지역 소매·유통업체를 대상으로 ‘2022년 4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를 조사한 결과 올 4분기 지역 소매·유통업체들의 경기전망지수는 ‘74’로, 기준치(100)를 크게 밑돌았다.
그렇다고 충장·금남로 상권의 미래가 온통 우울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코로나19 등 각종 위기를 꿋꿋하게 버텨온 충장·금남로 일대 상인들은 “그래도 희망은 있다”며 다시 한번 옛 영광을 기대하고 있다.
일단 광주시 동구가 100억원 상당의 중소벤처기업부 공모사업 ‘제5차 상권 르네상스 사업’에 선정돼 2026년까지 충장로와 금남·충금지하상가를 지하와 지상을 잇는 입체 상가로 융합해 도심 상권 활성화에 나서기로 한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광주시 등의 전폭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일성 충장로 1·2·3가 상인회장은 “충장·금남로 상권 쇠퇴를 극복하기 위해 무등극장 건물을 매입해 ‘랜드마크’로 삼을 만한 주상복합 건물을 신축하는 등 상권 활성화 계획을 진행하고 있으나, 일부 한계를 느낀다”며 “광주를 상징하고, 광주의 역사를 품은 충장로·금남로가 침체하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다. 상인들도 노력할테니 광주시와 시민들도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